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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소식

문명의 아버지

시드 마이어에 관련된 좋은 기사가 코타쿠에 나와있어 이렇게 옮깁니다. 본 기사는 Jason Schreier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원문을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소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문명의 아버지 (The Father of Civilization)


시드 마이어가 시드 마이어 - 해적들!문명처럼 고전 작품에 찍힌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의 아이콘적인 이름 - 이기 이전에 그는 그저 다른 컴퓨터 해커였습니다. 


80년대 초, 그리고 20년대에 어떤 프로그래머가 제네럴 인스트러먼트 코퍼레이션이라고 불린 회사에 직업을 갖게 되었으며, 걸걸한 미공군 조종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존 "와일드 빌" 스틸리라는 이름의 사람과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모든 집에 퍼스널 컴퓨터가 있기 전에 컴퓨터 과학에 학위를 갖고 졸업한 마이어는 여가 시간에 해커 잡지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고, 그의 아타리로 코드를 만지작거리며, 스페이스 인베이더팩맨같은 아케이드 게임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느 시점에 그는 우주 게임을 만들었고, 그걸 그의 직장 네트워크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건 수 많은 직원들을 홀렸고, 그의 상사는 그에게 그걸 내리라고 종용했죠. 


어느 해, 스틸리가 기억하기론, 두 남자는 일렉트로닉스 트레이드 커너런스에 갔습니다. 쇼의 이틀째 되는 날 밤에 그들은 우연히 지하에서 엄청난 아케이드 게임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둘은 그 아케이드 게임들을 즐겼고, 마이어는 하나하나씩 그 게임들에서 스틸리를 이겼습니다. 그 뒤 그들은 아타리의 붉은 남작[각주:1]과 공상과학으로 유명한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각주:2], 시드 마이어는 공룡이 있습니다.


지난 15년동안, 마이어는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를 찌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항상 쥐라기와 갑각류 시기에 관한 게임을 만들고자 했죠. "시드 마이어의 공룡" 꽤 괜찮게 들리지 않나요? 하지만 그는 그걸 어떻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주제는 괜찮지만, 그는 올바른 게임플레이 기반을 찾아내지 못할겁니다: 공룡을 뭘 할 수 있겠어요? 서로 싸우는거? 어떤 식으로 진행하겠어요?


"저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프로토타입을 만들긴 했어요."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하나는 실시간으로, 하나는 턴 방식으로, 그리고 하나는 카드 게임 형식으로요. 그리고 그건 모두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었지만, 그리 재밌진 않았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저도 게임을 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마치 그의 전설적인 맞수 중 하나인 마리오의 창시자 시게루 미야모토처럼 들렸습니다. "그게 어떻게 제가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이죠.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걸 고치고, 변경하면서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때 '오, 그거 괜찮네.' 라고 하면 제가 묻죠. '그런데 지금도 해?' 만약 그들이 '아니, 지금은 안하는데.' 라고 말한다면 그건 문제인겁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게임이 원래 가져야 할 재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마이어의 부인인 수잔이 맞장구를 칩니다. 수잔은 파이락시스 초창기부터 같이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인사 관리장으로써, 그리고 지금은 "잡무의 달인"으로써요. 물론 잡무의 달인이라는건 그녀가 자기 스스로를 부르는 칭호지만요. "당신이 뭔가를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들 중 하나는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 게임을 길게 그리고 자주 플레이할 때에요." 그녀가 말합니다.


"설령 그들이 그렇게까지 플레이할 필요가 없는데도요." 마이어가 웃으며 말합니다. "그게 좋은 징조죠."


마이어: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 게임을 즐길 때 '오, 그거 괜찮네.'라고 하면 제가 묻죠. '그런데 지금도 해?' 만약 그들이 '아니, 지금은 안하는데.'라고 말한다면 그건 문제인겁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그건 게임이 원래 가져야 할 재미가 결여되어 있다는걸 의미하니까요. ."


하지만 그런 그도 공룡들만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파이락시스에서 직장 면접 때 처음으로 마이어와 만났던 솔로몬은 디자이너들과 같이 앉아서 그의 공룡 프로토타입 중 하나를 플레이한걸 기억합니다.


"그는 그걸 틀고서는 제게 플레이하자고 했죠."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게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피드백을 얻기 위한 것인줄 알았어요. 저는 게임을 플레이했고,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 그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건 내가 그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였어요. 내가 재미를 느꼈는가? 나라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그리고 그건 뭐 면접같은 느낌이 아니였죠. 저는 그가 그 게임을 이용해서 제 성격을 가늠하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 물론 그 자리가 면접 자리가 맞긴 했죠. 그리고 저는 시드 마이어의 굉장한 프로토타입을 플레이했구요."


그렇지만 솔로몬도 그 게임을 뛰어나게 만들지는 못했다. 마이어는 "절망의 계곡"에 대해 이야기하는걸 즐겼습니다. - 게임 디자이너였을 때, 실패했던 아이디어들의 무게와 버린 프로토타입들에 짓눌려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시드가 게임에 대해 했던 말 중 유명한 것은 게임은 흥미로운 결정들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문명 혁명에서, 그는 한 번 웃고 말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흥미로운 결정들의 연속이지만, 게임을 만드는건 애달픈 실망의 연속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계곡을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때엔 숨이 막힐 것만 같았죠.


솔로몬이 입사한지 얼마 안되서, 마이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공룡 게임을 더이상 못만들겠다고 했죠.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갔고, 우리는 2주나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두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마치 '괜찮아, 나한텐 다음 게임도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리고 그는 화면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심골프였죠."


심골프에 대한 비디오나 리뷰는 따로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이어가 현재 작업 중인 프로토타입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는 궁극적으로 최종 상품에서는 자신만의 골프 코스를 디자인하고 지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시, [그리고 EA의 이사였던] 빙 고든이 시드의 사무실을 찾아와서 자리에 앉고는 한 두 시간정도 게임을 플레이했죠. 그리고는 나와서 '좋아, 우리는 이걸 판매할 수 있겠어!'라고 말했죠." 솔로몬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걸 본 모든 사람들이 그 게임이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The Father of Civilization


그 프로토타입의 중추 사고방식은 마이어가 항상 게임을 만들던 방식이었고, 그의 성공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는 디자인 문서나 비디오 게임이 어떻게 성공할 것이다 라는 식의 설명이나 보고서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많은 게임 제작자들이 실제로 게임을 만들기 전에 아이디어와 컨셉을 종이 위에 씁니다. 반면 마이어는 쓰기보다는 직접 만들어봅니다.


"시드는 한 번도 디자인 문서를 만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삽입하길 원하는 새로운 특징들에 대해 사람들과 토론을 하기보다는 그냥 집에 가서 밤에 직접 실험해보죠."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회사로 오면 그가 말하죠. '좋아, 이제 이 새로운 걸 한 번 해봐." 그리고 여러분은 플레이하죠. 그 뒤에 여러분은 그 게임에 대한 진짜 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디자인 문서를 훑어보는 대신에요." 마이어는 이런 방식과 만트라를 다른 게임 디자이너들과 나누길 좋아합니다. 


"재미를 찾아라 - 그것이 시드의 즐겨 하는 말이죠." 레이놀즈가 말합니다. "근본적으로, 여러분은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재미는 좋이에서 찾을 수 있는게 아니죠. 적어도 비디오 게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써의 재미는요."


레이놀즈가 말하는 마이어의 작업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옛날 농담이 떠오르게 됩니다: "코끼리 석상을 어떻게 조각하시겠습니까? 대리석 한 조각을 갖고 코끼리같이 안생긴걸 빼다보면 만들어지죠." 좋은 게임을 어떻게 만드냐구요? 게임을 하나 가지고 재미가 없는 모든 부분을 뺴면 됩니다.


"그는 제게 제가 항상 자주 쓰는 말을 알려줬죠."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피드백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드백을 봐야 하는 것이다. 네가 거대한 시스템이나 게임을 작업하고, 누군가가 네 사무실에 왔다가 가면서 '그거 플레이해봤는데, 지루했어.'라고 말할 떄, 네가 디자이너로써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동은 네 디자인을 옹호하려고 시작하거나 그 사람과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들이 지루했다고 말했다면, 그건 뭘 의미하지? 그건 네 게임이 적어도 그 사람에겐 정말로 지루한 거야. 그리고 너는 왜 그런지 알아내야 하는거야. 그 사람과 논쟁하거나 네 디자인을 옹호할게 아니라."


거기엔 또다른 규칙도 있습니다. 레이놀즈는 그가 관철했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만약 당신이 비디오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숫자로 문제를 겪고 있다면 - 예를 들어 한 유닛이 줄 수 있는 데미지 수치같은 것처럼요 - 반으로 줄이던지 혹은 두 배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는 '한 번 그거 10%정도 올려보자. 10% 더 올려보자' 이런 식의 참을성이 없었죠." 레이놀즈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꽤 좋은 경험 규칙이죠. 특히 이제 막 게임 디자이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요. 왜냐하면 이 일반적이라는게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고, 살짝 올리려고 하면 의도한 목표까지 도달하는데 한 예닐곱 번은 바꿔야만 하거든요. 만약 그걸 그냥 두 배로 만들어버리면, 여러분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할 지 알 수 있죠."


마이어: "제 생각에 다음 질문은 '게임을 덜 재미있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겁니다.


이러한 과정은 먹혀들었습니다. 마이어의 게임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고, 사람들은 이렇게 묘사하곤 합니다. "문명을 오후 8시에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 4시더군요." 이런 말은 흔하죠. "중독"이라는 말이 자주 인용됩니다. -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재미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긴 하지만 중독은 위험한 것일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마이어와 대화를 하는 중간에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게임이 사람들의 삶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을거라는 걱정을 해본 적이 있을까?


"저희가 포럼이나 플레이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받는 답변들은...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는) 저희의 인상은 긍정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티비나 다른 무언가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겠죠.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플레이어들로부터 느끼는 반응은 그들이 긍정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게임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그들이 뭘 생각했는지, 그들이 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것 등 말이죠.


"제 생각에, 아마도 다음 질문은 '게임을 덜 재미있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겁니다. 재미있네요. - 몇몇 극초기 PC 게임 디자인들에서, 저희는 '보스 키'라는 걸 쓰곤 했죠. 그 특수한 키를 누르게 되면 스프레드시트가 화면에 떠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키죠. 제 생각에 그건 아마도 10년 혹은 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겁니다. 하지만 게임은 그저 재미있죠.


"어떤 종류의 오락거리든 그것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결정하는건 플레이어나 부모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죠. 제 생각에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문명은 노예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이 게임의 불쾌한 역사적 사실의 누락에 대해 비판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마이어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비록 마이어와 그의 팀이 역사를 다루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말 끔찍한 부분들은 제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드 마이어가 게임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가 20년동안 작업을 해왔던 어떤 게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에서 심골프까지요. 


"거기엔 감동적인 주제와 플레이어에게 게임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선택의 자유를 줄 지에 대한 정서적 갈등이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희가 저희 게임에서 정말 피하려고 하는 것들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이 선택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선택은 내가 게임에서 이기게 해줄거야' 와 같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그런 종류요. 그것은 저희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게임을 끝마칠 때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느끼게끔 하고 싶습니다. 


즐거움을 느끼고 중독적인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수 만가지의 흥미로운 선택들: 그것이 "시드 마이어" 게임의 정의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이름을 상자에 삽입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집중적이고, 도덕적으로 도전적인 줄거리를 가진 비디오 게임에는 특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작년의 스펙 옵스: 더 라인 (2K에 의해 발매되고, 뒤에는 파이락시스의 게임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죠) 는 그런 측면에서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이어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죠. 그는 그가 실제로 플레이하길 원하는 그런 종류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아직... 지금까지도, 마이어는 여전히 문명처럼 기억될만한 혹은 놀라운 게임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심골프 이후엔 해적들!을 리메이크했었고, 그 뒤에 마이어는 네 번째 레일로드 타이쿤 게임, 레일로드!를 디자인했었죠. 다음은 콘솔 친화적인 문명 혁명이었고, 올해 초에 서비스가 종료된 문명 세계라고 불리는 페이스북 게임이었고, 그리고 에이스 패트롤이었죠. 이 모든 게임들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그의 걸작이라고 사람들에게 각인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마이어는 제게 후회가 없다고 말했었지만 - "테트리스를 생각하지 못한 것만 뺴면요" 저는 그가 때때로 문명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걸작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문명을 만들었을 때, 저희 이름이 기억될 만한 걸작이 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건 그 당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이었고, 저희는 그 게임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각각의 게임들은 그런 생각으로 만드는 셈이죠: 이 게임은 화제가 될만한 최고의 게임이 될거라는 생각이요. 그 게임들 중 몇몇은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강렬히 울려퍼졌습니다; 어쩌면 몇몇은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겐 끝장나는 걸작 게임을 만드는 비법같은건 없으니까요. 저희는 그저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게임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뿐입니다.





주석 일람



  1. [/footnote]을 발견하였고, 그 게임은 구불구불한 비행 게임으로 추상적으로 그려진 지형과 장애물을 통과해 복엽기로 조종하는 그런 거였습니다. 공군이었던 스틸리는 이걸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게임기에 앉아서 게임기의 점수판에 3등에 해당하는 75,000점을 달성하였습니다. 나쁘지 않았죠.


    그 뒤 마이어가 게임기에 앉았습니다. 그는 150,000점을 기록했죠.


    "저는 정말 말렸었죠" 스틸리가 오늘날 말합니다. 이 남자는 공군 조종사가 아니던가? 그는 그 프로그래머에게 물었습니다. "시드, 그걸 어떻게 한거야?"


    "글쎄"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네가 플레이하는 동안, 알고리즘을 외웠어."


    훌륭한 비디오 게임이란, 재미있는 결정들의 연속입니다: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의미있는 선택에 맞서야 하는 일련의 상황들이죠. 라고 시드 마이어는 즐겨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잘 도와주었던 정신입니다: 다수의 마이어의 게임들은 비평가들 사이에서든 상업적으로든 칭송을 받았습니다.  2009년 개발자 조사에서 약 9,000여명의 게임 제작자들이 그들의 "최고의 개발자 영웅"이라는 질문에서 마이어를 다섯 번째로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마리오의 제작자인 시게루 미야모토입니다)


    마이어의 게임들은 재미있는 결정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은 항상 완전히 다릅니다. 오픈 월드 방식의 해적 어드벤쳐 게임이 그러했고, 게티스버그의 전투를 그린 실시간 전략 게임도 그러했으며, 철도 경영에 관련된 시뮬레이션 게임도 그러합니다. 마이어의 최신작은 에이스 패트롤로써, 플레이어는 제 1차 세계대전 전투 중 적기를 격추시키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하향식 전략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문명이 나왔습니다.


    8자리 숫자의 예산들로 가득한 세상과 야심찬 비디오 게임 시네마틱의 20년된 문명의 범위는 오늘날에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게임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람들, 도시들 또는 군대들을 담당하게 합니다: 문명은 플레이어를 세계 역사를 담당하게 하죠. 여러분은 국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 미국, 로마, 영국 등등... 그리고 그들을 기원전 40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년을 지도합니다. 매 턴마다, 여러분은 2D로 이뤄진 세계 지도에서 사람들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정착지와 도시를 건설하고, 경쟁 국가들과 외교적으로 상대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시에 관개를 하고, 그리고 전쟁을 벌이죠.




    이 공식은 다섯 개의 주요 게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몇몇 파생효과들과 (북미에 집중된 식민사업(Colonization)[footnote] [본문으로]

  2. [/footnote]를 포함) 수 많은 확장팩들을 말이죠. 또 이건 "시드 마이어"를 게임계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문명의 공식 이름은 그냥 문명이 아닙니다; 그건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죠. 이 제목은 소유권, 오만함, 건방짐을 슬쩍 풍기기도 합니다. 그럼 PC 전략 게임들의 아버지는 그가 만든 모든 게임에 그의 이름을 넣는 그런 종류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매우 쉬울겁니다.  


    하지만 마이어는 쾌활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친근한 남자로, 그의 동료들은 훌륭하고, 공손하며,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13]년동안, 그리고 제가 파이락시스 (Firaxis)에서 일했던 모든 사람들 모두가 그럽니다" 동료 디자이너이자, 친한 친구인 제이크 솔로몬이 말합니다. "시드와 개인적으로 마찰을 빚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죠, 왜냐하면 그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지난 달, 저는 맨하탄의 유니온 스퀘어에 있는 쌀쌀한 회의실에서 전설적인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마이어는 상냥하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고, 짙은 회색의 카디건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그렇듯이 그의 아내인 수잔과 함께였습니다. 수잔은 그가 중요한 사실들이나 그가 잊고 있던 순간을 상기할 수 있도록 종종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게임들, 그의 인생, 그의 성취와 후회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마이어는 음악을 사랑하며, 그와 수잔이 살고 있는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를 즐깁니다. 그가 창업을 도왔던 스튜디오인 파이락시스에서 그의 직함은 "창의 개발 이사 (Director of Creative Development)"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는 뭐든 그가 원하는걸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어쩔땐 그건 그가 자신만의 게임에 몰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시간에는 그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사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XCOM이나, 솔로몬에 의해 지휘되는 다른 공상과학 전략 게임들를 도와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잠깐 들릴 수도 있어요. 그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죠." 솔로몬이 말합니다. "누구나 잠깐 들려서 뭐든 그와 이야기할 수 있어요...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환영해주죠. 그는 항상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쏟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말에 오게 된다면, 시드의 차가 주차장에 있고 그가 사무실에서 최근 아이디어에 대해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겁니다."


    솔로몬: "만약 여러분이 주말에 온다면, 시드의 차가 주차장에 있고 그가 사무실에서 최근 아이디어에 대해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겁니다.





    저는 마이어에게 물었습니다. 올해 59세인데 은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말이죠. "제가 느끼기엔 전 벌써 은퇴한거 같은데요" 그가 말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원하는걸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은퇴야 오래 전에 했죠. 전 그저 여전히 게임 만드는걸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론 그거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이 말은 비디오 게임 팬들에게는 희소식일 겁니다: 마이어는 극도로 중독적이고 계속해서 즐거운 전략 게임들을 만드는데 있어서 재주를 갖고 있으니까요. 그는 역사에 매료되었고, 그는 특히 여러분과 같이 평균적인 게임 플레이어들에겐 이상하고, 따분하고, 혹은 구식으로 보이는 것들을 전환시키는데 능숙합니다. 게티스버그 전투나 제 1차 세계대전 공중전처럼, 접근 가능하고 상호적인 재미로 이끌게 합니다.


    "그는 그냥 뛰어납니다." 솔로몬이 말합니다. "그는 제겐 없는 재능을 갖고 있어요. 세상을 그런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누군가를 찾기란 매우 어렵죠. 여러분이 그에게 게임에 관련된 주제를 준다면, 제가 보장하건데 그는 일주일 내로 그 주제와 관련된 테마를 주로 한 프로토타입을 들고 올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생각해겠죠. '오 이런, 이거 진짜 재밌는데' 시드는 그처럼 세상을 보는데 무척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죠."


    "그는 그저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할 뿐입니다." 브라이언 레이놀즈가 말합니다. 문명 2를 디자인했던 오랜 공동 제작자였죠. "그건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영리함은 '내가 너보다 잘났거든, 하하'와 같은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정말 재미있는 대화를 나눠보기만 하면, 여러분은 그가 얼마나 영리한지 깨닫게 될겁니다."


    "저는 그에게 [내전 (Civil War)]라는 책을 어느해 크리스마스에 준 적이 있습니다." 스틸리가 말합니다. "그리고 새해 그가 그걸 제게 다시 주더군요. 저는 '시드, 그 책 마음에 안들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더군요. '그거 벌써 다 외워버렸어.'"


    스틸리는 붉은 남작 게임에서 가볍게 이겨버리곤, 젊은 마이어는 그의 동료에게 아타리의 비행 시뮬레이션은 괜찮은데 난 이거보다 더 나은걸 만들 수 있을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스틸리는 미끼를 물었죠: "만약 니가 할 수 있으며, 내가 그걸 팔 수 있을거 같은데."


    마이어는 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분투했고, 몇 개월 뒤, 그는 스틸리에게 헬캣 에이스라는 이름의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스틸리는 나가 그걸 팔았죠. 이게 동업자의 시작이었고, 이후 십년을 지속했습니다: 마이어가 디자인하고 프로그램하면, 스틸리는 나가서 그의 게임을 지역 취미 상점에 내다 팔았습니다. 일년 동안 판매한 뒤, 스틸리의 주장에 따르면 $200,000 가까이 벌었고, 스틸리는 현재 마이크로프로스라고 불리는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 제네럴 인스트러먼트 직장을 관뒀습니다. 일년 반 뒤, 마이어도 관뒀죠.


    그 다음 몇 해동안, 마이크로프로스는 다수의 비행 시뮬레이션과 아타리 게임기를 위한 아케이드 액션 게임들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스핏파이어 에이스와 같은 게임이나, 기초적인 플랫폼 게임인 정글의 플로이드, 그리고 헬리콥터 구조대라는 사이드 스크롤러 형식의 게임들을 말이죠. 다른 많은 초기 비디오 게임 회사들처럼, 마이크로프로스는 전문 기업보다는 건방진 저항군마냥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희는 [게임들]을 부대자루에 넣었습니다." 마이어가 말했다. "빌은 상점들을 돌아다녔고, 그것들을 팔았습니다. 그건 무척 반복적이고 종합적인 업무 과정이었죠. 그리고 그게 그때 당시의 방법이었고요."


    "저는 컴퓨터 상점들에 전화를 해서 헬캣 에이스를 사고자 한다고 물었습니다." 스틸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물건이 없다고 했을 때, 저는 소리를 치며 고함을 질러댔죠. '무슨 놈의 컴퓨터 가게가 이래?' 라고 말이죠.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걸 3주에 세 번정도 했죠.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인척 하면서요. 그리고 4번재 주가 되는 때, 제가 전화를 걸어 말하죠. '안녕하세요, 저는 존 스틸리라고 하는데요. 저는 마이크로프로스에서 일을 하고, 저희 회사에서는 헬캣 에이스라는 게임을 만듭니다.' 그럼 그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기요, 저기, 저기, 모두가 그걸 찾던데요. 그 게임 좀 살 수 있을까요?"


    The Father of Civilization


    1983년에 비디오 게임은 아타리와 마그나복스와 같은 무능력한 회사들의 시장 포화 상태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마이크로프로스는 여전히 마이어에 의해서 개발된 높은 품질의 게임들을 통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게임들은 대개 비행 시뮬레이션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게 마이어나 스틸리가 관심을 갖던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 뒤, 회사가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 "300만 달러까지 도달하는데 3년이 걸렸죠", 스틸리가 말했습니다. - 누군가가 해적에 관련된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이어는 그 아이디어를 좋아했고, 그는 스틸리와 한 중요한  대화 하나를 기억해냈습니다.


    "빌이 말했습니다. '내 다음 비행 시뮬레이션이 언제 나오지? 그리고 제가 말했죠. '나 비행 시뮬레이션 안만드는데. 나 해적 게임 만들고 있어.' 그가 말했죠. '허참, 그거 정신 나갔네. 사람들은 네 다음 비행 시뮬레이션을 원하는데....잠깐만. 거기에 네 이름 붙여봐. 어쩌면 사람들이 네 비행 시뮬레이터 게임을 좋아한다면 네 이름을 알아볼테고, 그 정신나간 해적 뭐시기를 살거야."


    스틸리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저희는 소프트웨어 퍼블리셔 협회 미팅에서 저녁을 하고 있었고, [배우인] 로빈 윌리암스가 거기에 있었죠. 그리고 그는 두 시간동안 저희를 웃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곤 그는 저를 보고는 말했죠. '빌, 자넨 시드의 이름을 저 상자들에 붙이고, 그를 스타로 만들어야해.' 그게 해적 그리고 문명에 시드의 이름이 붙게 된 연유입니다."


    어떻든 간에 그 아이디어는 이제 고정되었죠. 1987년에 마이크로프로스는 시드 마이어의 해적!을 발매했습니다. 해적이라는 게임은 오픈 월드 탐험 게임으로 플레이어들이 매력적인 해적들, 보물을 찾아 세상을 모험하고, 반항적인 선원들을 예방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그런 역할을 맡는 그런 게임이죠.


    "저희는 그림들을 빠르게 불러오게 해줄 수 있는 그래픽 툴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메모리는 한정되어 있었죠. 모든게 한정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매우 능률적이어야 했지만, 저희는 이 사진들을 뜨게 만드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저희는 줄거리 상의 각각의 장면들을 삽화들을 집어넣는걸 가능하게 했죠. 그건 저희가 생각했던 대로 이 모험책 이야기를 질적으로 높이는데 잘 맞아들었죠."


    그건 강렬하게 잘 맞아들었습니다: 해적! 게임 업계쇼와 잡지들로부터 다수의 상을 탔고, 윌라이트의 심시티를 포함해 미래의 게임들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윌라이트의 심시티는 또다시 마이어의 문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이어는 윌 라이트, M.U.L.E 디자이너인 다니엘 번튼, 컨퍼런스 창시자인 크리스 크로포드, 그리고 50-100명의 다른 초기 게임 제작자들과 함께 했던 켈리포니아, 산 호세에서 열린 초창기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를 기억해냈습니다.


    "저희는 서로가 만든 게임들을 서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서로에게 말해주면서 재미를 느꼈죠."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거기서 공동 작업이나 협력은 실제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린 모두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자 했거든요.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허락하기엔 너무 재밌는 작업이죠."


    그들은 제 1세대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거대한 벼랑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희는 게임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마디어가 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 개 이상의 마이어의 게임들을 플레이해보았다면, 여러분은 특정한 공통적인 특징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피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비록 마이어가 폭력적인 역사적 시대를 다루긴 했지만, 그는 어떤 폭력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명의 전투가 그 예로써, 두 개의 군대가 타일에서 충돌하면 하나가 사라지긴 하지만 추상적으로 보여집니다. 


    마이어의 게임은 또 플레이어들에게 모든 가능한 선택 사항들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습니다: 직선 상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말하는 것 대신, 마이어는 플레이어가 그 또는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상황을 주성해주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다른 모든 국가들을 제거해버리고 세계 유일의 제국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될 수 있으며, 캐리비안에서 가장 상냥한 해적의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달려있습니다. "저는 플레이어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끌어갈 수 있는 게임들을 선호합니다."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 그들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고유의 이야기로써 끝을 맺는 것입니다."


    마이어: "저는 플레이어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끌어갈 수 있는 게임들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그 뒤, 그들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고유의 이야기로써 끝을 맺는 것입니다."


    어떤 게임도 이 원칙을 마이어와 그의 팀이 해적! 뒤에 개발사기 시작한 문명 그리고 그들의 차기작인 레일로드 타이쿤이라고 불리는 사업 시뮬레이션보다 잘 보여주지 못합니다. 레일로드 타이쿤은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의 철도 회사들을 건설하고 경영할 수 있는 게임이죠.


    "[심시티]는 저희 머리 속에 이런 종류의 건설 시뮬레이션에 대한 씨앗을 심었습니다. 건물들을 파괴하는 그런 게임이 아니라 창조적인 것에 대한 게임 말이죠."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런 아이디어를 레일로드 타이쿤에 반영했습니다. 심시티에서 나온 일부 아이디어를 말이죠. 그리고 저희가 다룰 수 있는 더 큰 주제가 뭔지 여러분은 아시겠죠? 그래서 저희는 바로 문명에서 끝을 봤죠."


    오늘날, 평균적인 블록버스터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100명으로 구성된 한 개의 팀이 2년 내지는 3년동안 만들어야만 합니다. 마이어가 말하길, 문명의 경우에는 8-10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1년 내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저희는 640 킬로바이트 메모리의 컴퓨터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게 꽉 차면, 저희가 할 일은 끝난거였죠. 저희는 그 이상의 코드를 집어넣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과는 달리 개발 기간이 짧은거죠."


    오늘날, 문명은 최고의 턴제 전략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히지만, 우습게도 최초로 개발되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실제로 스타 크래프트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처럼 실시간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매되지 않은 이 프로토타입은 마이어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건 심시티와 유사했습니다. 여기에다가 마을을 짓고 저기에다가는 농장을 짓고, 혹시라도 제가 여기서 무언가가 일어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말하자면 멀리 떨어져서 시민들이 천천히 무언가를 하는걸 바라보는거죠."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훨씬 수동적인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실제로 하기보다는 바라보는데 더 중점을 둔 거죠. 그래선 안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법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플레이어에게 더 통제권을 주었고, 속도를 바꿨습니다: 이제, 세상이 변하길 기다리는 대신, 플레이어는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플레이어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진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당시 마이크로프로스에서 막 일하기 시작한 브라이언 레이놀즈는 문명의 초기 제작 과정이 그와 그의 동료들로 하여금 철야를 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회사 내에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그때 당시엔 그런 용어는 누구도 모르긴 했지만요." 레이놀즈는 말합니다. "그건 어느샌가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그런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버전이 몇 일마다 나왔죠. 저는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고, 이 22년 청년을 무작정 방문하게 했으며, 말하게 했습니다. '여기 아이디어들이 있어요!' [시드]는 문명에 대한 제 아이디어들을 관대했고 진득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건 매우 재미있는 개발 과정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30대 후반이었던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는 원래 두 배 크기로 계획되었던 게임 지도를 줄여나갔던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술 발전에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있었던 것도요. 그리고 그는 부이사(Assistant Director)인 브루스 쉘리와 함께 수 없이도 많은 게임 테스트를 거쳤던걸 기억합니다. 


    "테스팅은 상당한 모험이었죠. 왜냐하면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거든요." 마이어가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테스터가 그리 많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고치고 변경하는 주 테스터였습니다."


    문명은 1991년 후반에 나왔습니다. 명성이 치솟기 전까지는 수 개월이 걸렸습니다. 왜나하면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게임을 시작하면서 로마인들마냥 뻗어나갔습니다. 마이어의 걸작은 수 많은 상들을 탔습니다. 컴퓨터 게이밍 월드라는 잡지에서는 "150개의 전 시대를 통털어 최고의 게임"에서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이놀즈에 따르면 800,000 개가 팔렸습니다.


    The Father of Civilization


    마이어가 그의 명성을 빛내준 게임 개발을 끝냈을 때, 그는 무언가 더 크고, 더 나은 것을 만들길 갈망했습니다. 더욱 어마어마한 것을요. 하지만 그는 또 그것이 터무니없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약 전작와 같은 종류의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거나, 그보다 더 크고 장대한 무언가를 만든다고 한다면, 저는 미쳐버릴거라고 말했었죠."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레이놀즈에게 미국 내에서의 판권 - 식민사업 (Colonization)과 문명의 속편에 집중된 -을 줘버리고 난 뒤,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하차했습니다. CPU 바흐(Bach)라고 불리는 음악 어플리케이션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었죠. (실제로 발매되진 않았죠)


    그동안, 마이크로프로스는 스틸리가 회사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구조 조정을 맞닥뜨리고 있었습니다. 1993년, 스틸리는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라는 회사에 마이크로프로스를 매각했습니다. 일 년 뒤, 그는 떠났죠. "그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었죠. 우리는 훌륭한 직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틸리가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여전히 마이크로프로스에서 일했던 걸 자랑스럽게 여길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족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했죠. 모두가 현금 보너스도 받았죠. 저는 오랜 기간동안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해고와 기업 정치에 실증난 마이어는 레이놀즈와 몇몇 동료 디자이너, 제프 브리그스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마이크로프로스를 떠나서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파이락시스 게임즈였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사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마이크로프로스의 새로운 소유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시드는 거기에 관련되는걸 원하지 않아요. " 스틸리가 나중에 나에게 말했습니다. "사업에 대해선 일절, 전혀요."


    시드는 사무실에서 코드를 작성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솔로몬이 말합니다.


    어쩌면 그게 파이락시스에 대해 마이어가 신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완전히 독립적이여서, 모기업으로부터 간섭받는걸 걱정할 필요 없이 창의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완전히 자유롭거든요. 그때즈음, 마이어는 벌써 급성장하는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명성을 갖고 있었고, 회사는 일렉트로닉 아츠와 그들의 다음 몇 가지 게임들을 유리한 협상을 빠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알파 센타우리와 외계 행성 배경의 문명의 스핀오프, 그리고 내전(Civil War)이라는 책에 나오는 전투의 이름과 동일한 실시간 전략 게임인 게티스버그였습니다.


    "아, 파이락시스" 마이어가 말했습니다. "병자들이 정신병동을 뛰어다니고 있었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한동안 회사는 작게 운영되었지만,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0-15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한 팀이 게임을 만들었지만, 약 15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120명이 되었습니다. 2005년 후반엔, 파이락시스는 테이크-투 인터랙티브에 의해 인수되었습니다. 바로 락스타 (그랜드 테프트 오토)와 2K (NBA 2K)의 퍼블리싱 회사죠.


    마이어: "아, 파이락시스. 병자들이 정신병동을 뛰어다니고 있었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그는 파이락시스에 200년에 입사했죠. "우리는 소중하고 훌륭한 남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갈등을 빚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점은 시드로부터 배운거죠. 왜냐하면 우리 스튜디오는 100% 시드 마이어로부터 발전해서 커진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의 성격은 스튜디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지도요. 그의 비전은 우리 회사의 비전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지난 10년 이상동안, 파이락시스는 콘솔 기반의 문명 혁명 (Civilization Revolution)식민사업 (Colonization)의 리메이크 작품을 포함한 수 많은 문명 후속작들과 스핀오프들을 만들어냈습니다.지난해 새로운 방식으로 Sci-Fi 전략 게임을  해석한 XCOM (솔로몬에 의해 주도된)은 수 많은 찬사를 받고, 코타쿠의 2012년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이스 패트롤과 함께 하운티드 할로우 그리고 iOS로 포팅된 XCOM으로 스튜디오는 보다 다양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합에게 모비딕이 있듯이[footnote] [본문으로]